본 작품은 전국 각지에서 구전되어 온 뱀신랑 설화 「구렁덩덩 신선비」를 생성형 AI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흔히 한국판 '미녀와 야수'로 불리지만 정작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이 설화를, 우리는 '허물'이라는 단어를 중심에 두고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허물은 뱀이 벗어 놓은 껍질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저지른 잘못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원전에서 자식을 빌고 또 빌던 할머니는 사람이 아닌 구렁이를 낳습니다. 이웃 장자네 세 딸이 구경을 왔다가 두 언니는 징그럽다며 돌아서지만, 셋째 딸만은 "구렁덩덩 신선비로구나" 하고 웃어 줍니다. 훗날 셋째 딸과 혼인한 구렁이는 첫날밤 허물을 벗고 선비가 되어, 그 허물을 절대 남에게 보이지 말라는 당부를 남기고 과거 길에 오릅니다. 그러나 동생을 시샘한 언니들이 허물을 불태우고, 신랑은 그 길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작품은 깊은 밤, 정화수 앞에 무릎 꿇은 할머니의 기도로 시작됩니다. 물그릇에 비친 보름달 위로 물방울이 떨어지고, 그 물결은 부엌 바닥의 삿갓으로 이어져 그 아래 웅크린 작은 구렁이를 드러냅니다. 이후 구렁이의 눈동자 속으로 들어간 카메라는 세월이 흐른 혼례 마당으로 빠져나오고, 등불을 따라 신방 문턱을 넘습니다. 이처럼 물결, 눈동자, 등불, 연기와 같은 매개를 따라 장면이 끊기지 않고 흘러가도록 구성하여, 한 편의 긴 두루마리 그림을 펼쳐 보는 듯한 흐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화면 전체는 오래된 비단 위에 석채로 그린 조선 회화처럼 바랜 색으로 절제하였습니다. 색이 선명하게 살아나는 순간은 단 두 번, 구렁이가 허물을 벗고 선비가 되는 첫날밤과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마지막 장면뿐입니다. 사랑이 시작될 때 색이 피어나고, 허물이 불타며 신랑이 먹빛 안개로 흩어질 때 세상의 색이 빠져나가며, 재회의 순간 다시 온 화면으로 번져 가는 흐름을 통해 대사 없이도 감정의 온도가 전해지도록 하였습니다. 선비의 도포 자락에는 구렁이의 비늘과 같은 문양을 새겨, 겉모습은 달라도 같은 존재임을 드러냈습니다.
허물이 불탄 뒤, 셋째 딸은 남편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봄꽃과 여름비, 가을 단풍과 겨울눈이 한 화면 안에서 차례로 지나가는 동안 그는 밭 가는 이에게, 빨래하는 이에게, 끝내는 까치에게까지 길을 묻습니다. 까치를 따라 우물 속으로 뛰어든 카메라는 땅 밑 세상에 닿고, 그곳에서 이미 새 아내를 얻은 남편을 노래로 불러냅니다. 물 길어 오기와 호랑이 눈썹 가져오기 내기에서 이긴 끝에야 두 사람은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원전의 여정을 임의로 줄이거나 바꾸지 않고, 1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그 흐름을 온전히 담는 데 가장 공을 들였습니다.
모두가 겉모습만 보고 돌아섰을 때 셋째 딸은 그 너머를 보았고, 지키지 못한 약속 앞에서도 사계절을 걸어 끝내 되돌려 놓았습니다. 결국 작품은 '우리는 누군가의 허물 너머를 볼 수 있는가, 그리고 나의 허물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오래된 설화 속 사랑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임을 전하고자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