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용 데이터: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여우고개>
제공기관명: 국립민속박물관
출처: https://folkency.nfm.go.kr/topic/detail/5583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시대다. 아이들은 잠들기 전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대신 유튜브 영상을 보고, 전래동화는 더 이상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구전(口傳)이라는 말 자체가 낯설어진 지금, 우리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이야기는 사람이 들려주지 않으면 정말로 사라지는 걸까. 그리고 사라진 이야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이 작품은 그 질문에서 출발했다. 여우고개 설화 속 여우는 원래 사람으로 둔갑해 사람을 속이는 존재로 전해진다. 우리는 여기에 현대적인 설정을 더했다.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아 잊혀진 존재, 그래서 스스로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 직접 이야기를 전달하는 존재. 우리의 이야기 속 여우는 괴물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잊힌 전래동화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다. "이야기가 끊기면 나라는 존재도 소멸한다"는 여우의 대사는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이다. 전래동화 속 존재들은 우리가 이야기하기를 멈추는 순간 정말로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전래동화 속 여우가 원래 지녔던 경계와 교훈의 기능을 되살리고 싶었다. 스마트폰에 몰입해 주변을 인지하지 못하는 오늘날 아이들에게 더 절실하게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보며 걷던 아이가 낯선 할머니를 만나는 장면 역시, 기술이 만든 무방비함과 전래동화가 원래 지녔던 경고의 기능을 겹쳐서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설계하였다.
영상의 형식 또한 이 주제를 담아 준비했다. 현대적 미디어 형식과 구전 설화의 언어가 한 영상 안에서 융화되도록 구성한 것은 전래동화가 낡고 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 역시 충분히 향유할 수 있는 문화라는 것을 전달하고자 했다. 잔인한 변신 장면 대신 그림자와 실루엣으로 공포를 암시한 연출 역시, 직접적인 자극보다 옛이야기 특유의 여운과 상상력을 살리는 방식을 택한 결과다.
결국 이 작품을 만들며 우리가 바랐던 것은 하나이다. 영상을 본 관객이 잊고 있던 전래동화 한 편을, 혹은 어릴 적 들었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한 자락을 떠올리는 것. 여우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 이야기를 필요로 했듯, 우리의 전래동화 역시 누군가 계속 이야기해줄 때에만 살아남는다. 이 작품이 그러한 이야기들을 잊지 않기 위한 작은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