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배경
부모는 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먼저 많은 것을 해준다. 밥을 챙겨주고, 공부를 시키고, 위험한 일은 하지 못하게 한다. 소년의 부모 역시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평범한 부모다.
하지만 부모가 많은 것을 대신 선택해주다 보니 소년에게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보고 직접 선택해볼 기회가 부족했다. 실패하더라도 한번 해보고, 잘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보는 경험도 많지 않았다.
소년은 소녀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도 그냥 그리고, 넘어져도 웃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일단 해본다. 소년에게 소녀는 새로운 사람이면서 동시에, 자신도 원래 가지고 있었지만 꺼내지 못했던 자유로운 마음을 보여주는 존재다.
그리고 소년이 있던 ‘알’ 역시 단순히 소년을 가두는 공간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소년을 보호하고 키워준 집이자 부모의 품을 의미한다.
- 의도
이 작품에서 부모를 소년의 자유를 막는 악역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모 역시 소년을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대신 선택해주고 보호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소년이 밖으로 나가는 이유도 부모가 싫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마지막에는 부모가 먼저 소년을 안아주고, 이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손을 놓아준다. 그리고 그때 소년은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으로 밖으로 나간다.
소년이 알을 깨고 나가는 장면 역시 부모에게서 벗어나거나 부모를 이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해보고, 실패하더라도 직접 경험해보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부모의 품에서 보호받으며 자란 작은 새도 언젠가는 자신의 힘으로 날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을 통해 사랑하는 것과 놓아주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며, 아이가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역시 사랑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