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상으로 하고 싶었던 말
어릴 때 저는 보도블럭 금을 밟으면 죽는다고 믿었습니다. 아무도 안 보는데 계단에서 뛰어내리고 착지 자세를 잡았고, 만화가 끝나면 혹시나 해서 서랍을 열어봤습니다. 그 세계는 학교에서 집까지 오는 내내 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좋은 도구를 갖고 있습니다. 뭐든 눈앞에 띄울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만큼 설레지는 못합니다. 영상을 만들면서 알게 된 건, 상상이 안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상상은 지금도 됩니다. 다만 그 안에 머무는 시간과 설렘이 예전 같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아주 조금만 열리게 했습니다. 다 돌아오지는 않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 기획 의도
AI로 만든 영상 대부분이 실사를 흉내 내는 데 쓰입니다. 그렇게 되면 잘 찍은 실사와 비교당할 수밖에 없고, 결국 "왜 AI로 했나"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저는 카메라로는 촬영이 불가능한 화면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의 놀이는 결국 현실 위에 다른 세계를 겹쳐 보는 일이었습니다. 보도블럭은 그대로 있는데 그 사이가 용암이었고, 계단은 그대로인데 뛰어내리는 순간이 필살기였습니다. 그 겹침을 화면으로 옮기려면 실사와 양식이 한 프레임 안에 동시에 있어야 합니다. 실사 촬영으로도, 도트를 찍는 방식으로도 만들 수 없는 화면입니다. 그래서 이 소재는 “AI야” 성립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상상을 실현하는이라는 주제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더 정한 것은 설명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습니다. 픽셀은 정보를 일부러 덜어내고 부족한 부분을 보는 사람이 채워야 성립하는 양식입니다. 이야기도 같은 방식으로 두었습니다. 왜 짧아졌는지, 왜 다시 해봤는지, 왜 조금 열렸는지 영상 안에서 한 번도 말하지 않습니다.
■ 형식 설계
① 세계는 몸의 놀이 동작으로만 열립니다. 금을 피해 뛰거나, 계단에서 뛰어내리거나, 서랍을 여는 순간 실사가 픽셀 게임 또는 2D 셀 애니메이션으로 전환됩니다.
② 비슷한 장소가 세 번 반복된다. 보도블럭과 계단, 서랍이 비슷한 앵글로 다시 나옵니다.
③ 세계가 열려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소리도 작습니다. 컷의 길이, 렌즈의 초점거리(어안 12mm → 광각 24mm → 표준 50mm), 그리고 8비트 테마가 재생되는 마디 수가 함께 줄어듭니다. 이 감소 자체가 이 영상의 서사입니다.
④ 인물은 눈 아래 점 하나로 이어집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가는 전환은 점이 화면을 가득 채운 상태에서 피부 질감과 색온도만 바뀌며, 컷 없이 16년을 건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