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각자의 무게를 안고 살아간다. 감당해야 할 것이 많아질수록 걸음은 빨라지고 어느 순간 타인의 무게를 돌아볼 여유마저 잃어간다.
〈연민은 여기 있었다〉는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 속에서 우리가 이미 지니고 있는 연민(憐憫)의 마음이 삶의 무게와 속도에 가려지는 과정을 그린 단채널 영상 작품이다. 연민은 타인의 고통에 마음을 두는 감정이다. 본 작품은 이를 타인의 고통을 알아차리고 잠시 자신의 걸음을 늦추어 바라보는 마음으로 해석한다.
작품 속 사람들은 저마다 거대한 돌을 들고 도시를 걷는다. 돌은 각자가 감당하는 삶의 무게이자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고통과 부담을 상징한다. 영상이 진행될수록 돌은 점점 커지고 사람들의 걸음은 빨라진다. 결국 사람들은 무언가에 쫓기듯 돌을 안고 달리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타인의 돌에 부딪혀 넘어지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좀처럼 멈추지 못한다.
그 사이 한 여성의 목소리가 반복해서 “연민아”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여러 사람이 부름을 듣고 뒤를 돌아보지만 외침이 반복될수록 반응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거대한 전광판 속 얼굴들 역시 한때 시선을 돌리지만 이내 다시 빠르게 흐르는 도시의 일부가 된다.
작품에서 뒤돌아봄은 연민을 드러내는 가장 단순한 행동이다. 누군가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가던 길을 잠시 멈추어 바라보는 순간이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이름처럼 들리던 “연민아”라는 부름은 반복될수록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연민의 마음을 다시 불러내는 목소리로 바뀐다.
돌은 점점 무거워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빠르게 달린다. 마침내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것은 연민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기보다 각자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잠시 주변을 바라볼 여유를 잃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연민은 여기 있었다〉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그 마음을 다시 떠올리고자 한다. 누군가의 고통을 알아차리고 잠시 걸음을 늦추어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빠르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 잠시 뒤돌아볼 수 있는 마음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잊지 않기를 바란다.